Daily Life

[책 필사] 일상 순례자 - 김기석

Soul:) 2025. 3. 23. 20:54

(1-30p)

 

 

 

4p

글을 쓰는 것은 시간이 우리 속에 새겨 놓은 무늬를 글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장르에 관계없이 글 쓰는 모든 행위는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5p

삶을 순례로 이해하는 내게 일상의 모든 순간은 벗어나야 할 질곡이 아니라, 나를 하나의 중심으로 이끄는 계기이다.

 

5p

글쓰기는 시간 여행자인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그 시대와 어떻게 만났는지를 돌아보려는 시도였다.

 

5p

누구를 가르치거나 교화시키려는 목표는 애당초에 없었다. 당시의 상황이 내 영혼에 어떤 공명을 일으켰는지를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다.

 

6p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굳이 되살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도 이 책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란노에서 이 책을 다시 내고 싶다는 제안을 해 왔다. 망설였지만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이 또한 이 책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6p

먹고 사는 일과 주어진 시간을 살아 내는 일의 엄정함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현실에 투항한 채 되는 대로 살고 싶지는 않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듯, 후텁지근한 일상 속에 영원을 모셔들일 수는 없을까? 오직 그 꿈 하나이다. 

 

9p

자기 생명을 스스로 택하여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삶의 시간도 자리도 다만 주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인간을 가리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 한다. 고독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9p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이 을 자각함으로써 깨닫게 된다. 

 

10p

그렇기에 사람을 사로잡는 기본 정조는 불안이다. 

 

10p

병든 물음표일망정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 암중모색하는 과정이 인생이다. 갈림길에 설 때마다 의지를 곧추세워 한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걷는다. 모호하고 불확실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을 기획한다.

 

11p

멀미를 잊으려면 환상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돈과 권력과 명예와 쾌락을 탐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환상에서 깨어나면 공허감은 더욱 깊어진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럽고, 부끄러워 또 술을 마시는 <어린왕자>의 술주정뱅이처럼 우리는 몰각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12p

어둠은 걷혔다. 겨울도 지나갔다. 예수를 선물로 받아들인 이들은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고 있다. 세상길은 여전히 팍팍하지만, 그 길을 흐르듯 걷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눈이 열린 이들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는 법이니 말이다. 

 

12p

예수는 언제나 질문인 동시에 대답이다. 나는 묻고 그는 대답한다. 이때 나는 콘텍스트이고 그는 텍스트이다. 또한 그가 묻고 내가 대답한다. 이를 통해 신앙고백이 생활이 된다. 물음과 대답의 되먹임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더이상 적막강산이 아니다. 향방 없는 날뜀도 아니다. 가야 할 길을 알고 걷는 이의 발걸음은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방향을 잃는 일은 없다. 예수를 길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마음에 든든한 지주를 세우는 일이다. 

 

14p

밤이 어두울수록 별빛이 더욱 영롱한 것같이, 어둠을 배경으로 놓고 볼 때라야 예수가 또렷하게 보인다. 예수를 통해 이웃들이 보인다. 보는 사람은 더 이상 관성적인 일상을 계속할 수 없다. 

 

15p

피에르 신부의 말은 우리 모두의 길잡이가 될만하다. "세상의 모든 돈으로도 결코 인간을, 그것도 서로 사랑하는 인간을 만들 수는 없음을 누가 알지 못하랴. 서로 사랑하는 인간들만 있다면 모든 걸 만들 수 있다. 행복도, 진정한 평화도, 꼭 필요한 돈까지도."

 

15p

가슴 시린 이를 덮어 주려는 마음이 없다면, 허방다리를 짚은 것처럼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설 땅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메마른 세상을 걷다가 목이 탄 이들에게 시원한 샘물 한 잔 대접하지 않는다면, 변화된 이들이 살맛을 되찾도록 돕지 않는다면 믿음은 헛것이다. 세상의 선물로 오신 예수, 그 예수를 따라 세상의 선물로 사는 우리! 세상은 우리를 그 자리로 부른다. 

 

17p

모든 생명은 사랑받기를 소망한다. 모두 평범한 행복을 꿈꾼다. 엄마의 새된 목소리에 쫓겨 졸린 눈 비비며 마지못해 잠과 작별하는 아이들의 표정, 커피 한 잔의 향기, 거리의 분잡, 일터에서의 적당한 스트레스, 평화로운 음악, 부드러운 말과 표정에 대한 그리움. 삶이란 이런 것 아닌가. 

 

19p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_만약 내가

 

20p

"용서하세요, 자매님들. 맹세코 나는 꽃을 피우고 싶지 않았지만 갑자기 내 가슴속에서 따뜻한 봄바람을 느꼈어요." 가슴에서 봄바람을 느끼면 어쩔 수 없다. 봄의 사람이 되는 수밖에.

 

21p

세상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비극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개성 죽이기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 오직 그에게만 줄 수 있는 찬란한 선물을 품부 받아 이 세상에 온다. 

 

21p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저들에게 오랜 행군을 견디어낼 발을 허락해 달라고, 어떤 시련이 와도 정복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저들의 마음마다 세워지게 해 달라고, 현실 논리에 자발적으로 투항하거나 길들여지지 않는 살아 있는 생명이 되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빈다. 

 

22p

이 생기 충만한 날,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들사람을 만나고 싶다. 스스로 자기 삶의 입법자가 되어 새로운 생의 문법을 만들어 가는 사람, 전사가 되어 낡은 가치를 사정없이 물어뜯고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버리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기꺼이 끌어안는 성스러운 반역자들. 새로운 세상은 그들을 통해 도래한다. 우리보다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이는 그 길을 일러 십자가의 길이라 했다. 

 

23p

욕망에 부푼 가슴들이 자아내는 악취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세상을 원망하지는 말 일이다. 원망은 약자의 버릇이라지 않던가. 겨울 칼바람 속에서 피어날 날을 기다리며 안으로 향기를 머금은 저 나무처럼 살 일이다. 일상의 향기 그윽하게 머금은 봄의 사람들이여, 이제 깨어나소서. 

 

26p

성경을 유심히 읽은 사람들은 '너희가 이집트의 노예였던 시절을 기억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수치스러운 과거는 한시라도 빨리 잊거나 자식들에게 숨기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족보를 날조하기도 한다. 물어 보라. 조상 가운데 조선 시대에 양반 아니었던 사람이 있는지. 모두 다 대단한 집안 사람들이다. 

 

27p

우리는 자녀 세대들에게 들려줄 신앙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가. 예수 믿었더니 모든 게 잘 되더라는 이야기 말고, 예수를 제대로 믿기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손해본 이야기 말이다. 예수의 정신을 따르기 위해 오해받고, 따돌림 받은 이야기 말이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신앙을 매우 사사로운 차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신앙은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예수님이 시작하셨고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만들어 가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 바로 그것이 신앙생활의 기쁨이요 보람이다. 

 

27p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으로부터 비롯된 생명의 이야기에 합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구원사의 일부가 된다. 

 

28p

날이 갈수록 세상은 인간성의 황무지로 변하지만 울면서라도 그 황무지에 참 사람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이 필요하다. 경쟁과 출세에 관한 이야기가 압도적인 세상이지만, 사랑과 섬김과 돌봄을 통해 이루어 가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

 

28p

기독교 교육이 출발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부모 세대들이 살아가는 동안 느낀 기쁨과 슬픔, 공포와 희망, 그리고 그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총과 위로를 전해 주는 것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김기석 목사님의 삶이 멋지다.-